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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기록일기> 오르테가-부르고스 대성당 / 안전한 삶의 위험성

아침에 일어나서 짐을 싸고 배낭을 배달 보내기 위해 알베르게 복도에 두었다. 한결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알베르게를 나섰다.
무거운 배낭이 없으니 몸이 날아갈듯 가볍다. 사람들이 동키서비스 한 번쓰면 중독된다고 하던데 왜인지 알 것 같다. 몸을 짓누르는 배낭이 없으니 컨디션이 달라지는 느낌이다.
오테르가에서 부르고스까지 26km를 걸어야 한다. 지금까지 걸은 거리 중에 제일 길다. 그러나 배낭이 없으니 해볼만하다.

알베르게를 나와서 1시간쯤 걷다가 뒤를 돌아보면 여명이 밝아온다. 까미노에서는 아름다운 일출을 매일 볼 수 있다.

자갈밭도 지나고 십자가도 지나가는 길이다.

오늘도 나는 그림자 친구와 걷는다.

걷다가 앞에 외국인 커플이 꽁냥꽁냥하며 걸어가는게 보인다. 서로 챙겨주고 챙김당하는(?)모습이 예쁘고 부럽기도 하다. 사랑하는 누군가와 왔더라면 이 길이 좀 더 풍요롭고 특별했을까? 지금은 혼자 온전히 이 길을 걷고 있지만 언젠가는 소중한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기도 하다.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 까미노에서 외국인친구가 결혼할 남자친구와 까미노를 걷고 싶어했다. 주위 사람들은 위험한 짓이라며 만류했다. 아마도 한 달 이상을 하루 20km이상 걸어야 하니 서로의 밑바닥(?)을 보게 되고 관계가 틀어질 수 있으니 위험하다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 외국인 친구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없다."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렇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 위험부담 없는 안전한 삶을 살았다. 취업을 위해 안전하게 간호학과에 입학했으며 안전한 직장에 취업해 안전하게 돈을 벌었다. 그렇게 안전하게 살아온 댓가가 무엇인가? 먹고살 만큼 돈을 벌고 적당히 저축하며 적당한 집에 적당한 차를 끌고다닌다. 안전하고 적당한 삶이었지만 난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물질적으로 신체적으로 안전하고 편안했을지언정 심리적, 정신적으론 전혀 그렇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안전하게 살았는가? 남에게 비춰지는 평균적인 기준에 맞추며 살다보니 내 마음의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 그 댓가로 번아웃과 우울증이 왔고 나는 이제 더 이상 안전하게 살지 않기로 했다.

걷다보니 넓은 평야가 나온다. 가만히 보고있자니 갑자기 눈물이 난다. 아름다운 풍경에 감격을 한 건지 어쩐 건지 모르겠다. 그냥 갑자기 눈물이 난다.
도착 5km 지점부터 급 피곤하고 힘이 든다. 벤치에서 몇 번을 쉬다가 걷다가 한다. 점심으로 바에서 먹은 또르띠아와 크로와상이 잘못 된건지 속이 메스껍다. 체한 듯한 느낌이 든다. 막판 1km는 허리를 부여 잡고 기다시피 걸었다. 택시를 탈까 수십번 고민하다 결국엔 끝까지 걸어서 도착했다. 알베르게 체크인하고 베드에 시트만 대충 깔고 드러누웠다. 그렇게 30분 정도 휴식을 취하니 컨디션이 돌아왔다. 아마도 피로가 누적 돼서 몸에 무리가 왔나 보다. 부르고스에서 연박을 할까말까 고민했는데 연박을 해야겠다.
알베르게 맞은편 바에서 동키보낸 배낭을 찾아왔다. 바에 가 보니 내 배낭만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배낭 찾으러 간 시간이 5시 정도 였으니 그럴 만 하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간단하게 블루베리와 요거트를 먹고 나니 살 것 같다.

동네좀 돌아볼겸 밖으로 나왔는데 너무 멋진 성당이 바로 앞에 있다. 부르고스 대성당이다. 오늘 걸으며 힘들었던 피로감이 싹 날아가는 기분이다. 성당 주위를 한 바퀴 돌고 해가 질 때까지 성당 앞에 앉아있었다. 부르고스성당을 보니 내가 정말 스페인에 왔으며 관광하는 기분이 든다.
내일은 관광객 모드로 부르고스를 돌아다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