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산티아고 순례길 기록일기> 사리아-포르토마린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나갈 채비를 하고 7시에 출발했다.

안녕~ 사리아. 오늘 사리아를 지나면 순례길이 100km도 남지 않는다. 언제 이 만큼 걸어왔나 싶다.
사리아를 벗어나자 숲길로 길이 이어진다.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해 뜨기 전이라 어두운 숲길을 랜턴에 의지해 걷는다.

걷다보니 구름 사이로 태양이 떠오른다.
오전 내내 비가 오더니 오후엔 비가 그치고 웬일로 해가 뜬다.

드디어 100km 이정표를 만났다. 순례자들이 다들 기념사진을 찍는다. 여기서 또 한번 울컥했다.

사리아부터 순례자들이 많아진게 확 느껴진다.


포르토마린에 다 와갈 즈음 한국라면을 파는 기념품가게에 들렀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리 없다. 신라면 하나를 뚝딱 해치웠다.
라면을 먹는 동안 한국사람이 계속 들어온다. 순례길에는 한국사람이 많다. 동양인의 90%는 한국사람인듯 하다. 외국인들이 까미노에 한국사람이 왜 많이 오냐고 묻는다. 나도 모르겠다. 한국사람이 왜 까미노에 많이 오는지는 미스테리다.

날씨가 너무 좋다. 날씨가 좋으니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저 멀리 포르토마린이 보인다. 날씨가 좋으니 걸을만하다. 얼마만에 보는 푸른 하늘인지 모르겠다. 갈리시아 넘어오기 전에는 매일 보는 하늘이었다. 지금은 열흘만에 푸른하늘을 본다.
포르토마린 공립알베르게에 체크인했다. 샤워실을 갔는데 칸막이만 쳐져있고 문이 없다.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후다닥 씻고 나왔다. 다행히 남녀구별은 되어있었다.
갈리시아지방 공립 알베르게는 식기류가 없다. 접시나 컵, 포크, 숟가락이 전혀 없다. 전자레인지와 인덕션은 있다. 코로나때문에 치운 건지 원래 없는건지 모르겠다.
슈퍼에서 장을 봐서 저녁으로 간단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그저께부터 마주쳤던 한국인 아저씨와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했다. 그 분은 재테크로 50대에 경제적 자유를 이루셔서 일찍 은퇴하셨다. 지금은 60대신데 부모님 돌보느라 이제야 까미노를 오셨단다.
이 분 손주가 다음달에 태어날 예정인데 손주 앞으로 주식을 2천만원 어치 사주실거라고 하셨다. 2천만원 사 준 주식은 20년 뒤에 손주한테 주신단다. "그때 되면 나는 없겠지"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너무 슬펐다.
혼자 걸으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시는데 시간이 블랙홀 같단다.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고 앞으로만 흐르는 것이 블랙홀 속으로 시간이 빨려들어가고 있는것 같다고 하셨다. 그럴듯하다.
걸으시면서 부모님 생각하며 울기도 하신단다. 나도 그랬다.
나는 조부모님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을 하면서 많이 운다.
나의 아빠는 불쌍한 사람이다. 어렸을적 부터 거의 본 적이 없어서 정도 없고 버려진 기억이 내 무의식에 박혔는지 원망스러운 마음이다. 만나면 어색하고 연락은 전혀 하지 않는다.
최근까지 아빠에 대한 미움만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안타깝다. 할아버지가 무서워 원치 않는 여자와 결혼해 나를 낳았고 내가 100일도 안돼 이혼했다. 어떻게든 나를 키워보려다 안돼서 부모님께 나를 맡겼다. 그러고 본인의 인생은 포기했다. 알콜중독으로 술에 의지해 외로운 세월을 버티셨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노가다로 겨우 입에 풀칠했다. 외롭고 우울할때면 술로 외로움을 달랬겠지... 처자식이 없으니 무슨 낙이 있으랴. 그렇게 우울증까지 얻은 상태로 지금까지 몇 십년을 사셨다. 안타깝다. 나는 포기했어도 본인의 인생은 포기하지 말지.. 하지만 그게 본인의 뜻대로 되지 않았으리라. 아빠가 이제부터라도 본인의
인생을 사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