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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기록일기> 포르토마린-팔라스 델 레이

오늘도 7시에 알베르게를 나왔다. 7시에 나오면 캄캄해서 랜턴이 있어야 걸을 수 있다. 얼마 걷지 않아 마을을 빠져나와 숲길이 시작되었다. 숲길은 나무가 무성해 랜턴 없이는 한치 앞도 안 보인다.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걷는것도 이젠 익숙해졌다. 숲 속 오르막길을 열심히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동물이 보인다. 2마리다. 형체를 보니 개 아니면 늑대같기도 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아마 개 인듯 싶었지만 늑대일 수도 있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 일단 헤드랜턴을 끄고 뒷걸음질을 쳤다. 다른 순례자가 오기를 기다려 봤지만 한 명도 오지 않는다.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스틱으로 방어태세를 취한다. 멈췄다 뒷걸음치다를 반복하는데 2마리 개가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온다. 온 몸이 긴장된 상태로 스틱을 꽉 잡았다. 나한테 달려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무서웠다. 그러나 다행히도 2마리 개는 내 옆을 쓱 지나갔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다시 길을 걷는데 긴장이 풀려서 팔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제 다시는 어두울 때 나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걷는다.
그러고도 한 참을 깜깜한 숲 길을 걸었다. 한 번 동물을 마주치고 나자 조그만 소리에도 무서운 생각이 든다.
날이 밝고 나서야 안심하고 걷는다.

오늘 걸으면 산티아고까지 70km가 남는다. 거리가 줄어드는 이정표를 볼 때마다 마음이 복잡하다. 아쉬움에 눈물도 난다.


걷다가 바에 들렀는데 여행사 통해서 오신 한국인 순례자분을 만났다. 나이가 50~60대 정도로 보였다. 빵 하나를 주문하고 앉았는데 마실거라도 하나 사 주고 싶다고 오렌지주스를 시켜주셨다. 다른 한국인 어머니는 과자에 육포를 챙겨주셨다. 역시 한국인은 정의 민족이다. 어머님들은 어리거나 젊은 한국사람을 보면 뭐 하나라도 챙겨주고싶어 하신다. 너무나 감사하다.
오늘의 목적지 팔라스 데 레이 도착 직전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동행과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먼저 간 순례자가 맛집이라고 추천해줬다.
얼른 가서 점심을 먹기 위해 열심히 걸었다.
어제 자다가 새벽 3시에 깨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 그 여파로 걷는 와중에 졸리다. 반쯤 수면상태로 걷는다.
아무리 걸어도 식당은 나오지 않는다. 또 불평불만이 시작된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침까지만 해도 얼마 남지 않은 거리에 아쉬워서 울었는데
나오지 않을 것만 같던 식당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동행이 나를 맞아준다.
나는 문어감바스를 시키고 동행은 스테이크를 시켰다. 문어감바스는 짜지 않아서 좋았다.

나는 다 먹었는데 동행은 스테이크를 반쯤 남겼다. 동행도 나도 한식파라서 양식이 입에 잘 맞지 않는다. 산티아고와 포르투갈 여행하며 꼭 한식을 먹자고 함께 다짐하고 식당을 나왔다.
식당에서 나와 조금 걷자 알베르게가 나와서 동행과 헤어지고 체크인했다. 이때가 4시 20분 정도였는데 내가 첫 체크인 순례자였다. 샤워하고 나와도 아무도 안 들어온다. 혼자 자야하나 하고 있는데 순례자 한 명이 들어온다. 혼자 자면 무서울 것 같았는데 다행이다.
오늘은 점심을 늦게 먹어서 저녁은 바나나로 간단하게 먹었다. 어제 못 자서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