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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그리고 그 후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했다. 대성당에 도착하니 울컥하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드디어 왔구나. 이 길이 끝났구나. 감동과 아쉬움이 뒤섞였다.
지금은 순례길을 걸은 후 남은 유럽여행도 무사히 끝내고 한국으로 들어와있다.
순례길을 걸은 후 나는 얼마나 변했을까? 변화를 기대했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순례길을 걷게 된 계기는 내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시작됐다.
일하면서 번아웃이 왔다. 무기력과 우울증이 동반돼서 그만두겠다고 이사님께 말씀드렸다. 그러나 내 의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금만 더 해보라며 나를 붙잡았다.
나는 무기력한 상태로 꾸역꾸역 출근했다. 출근한 시간이 지옥같았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동안 나는 죄책감과 불안감, 자기비하에 시달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면서 죄책감이 올라왔고 내게 주어진 일들은 하기 싫었다. 출근한 시간도 괴로웠지만 무엇보다 제일 괴로웠던건 내 스스로를 향한 비난이다. 겨우 이 정도 가지고 힘들어하는거야? 약해빠졌어. 이까짓 일로 힘들어하면 안돼. 하는 생각들...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평가대상이 되었다. 내 자신조차 내 편이 되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비난을 쏟아부었다. 스스로를 향한 비난이 가장 힘들었다.
그리고 일을 놓고싶지만 그만두지 못하는 내 자신도 너무 싫었다. 불안해서, 혹은 사장님이 신경써 주시는데 그만두기 미안해서 나는 괴로운 마음을 안고 다시 출근했다. 내 자신을 우선순위에 두지 못했다.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결정을 하지 못하는 내가 미웠다.
마음의 괴로움을 덜어보고자 책을 읽었다. 우울증에 관한 에세이었다. 저자는 어렸을적부터 우울증을 앓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우울증을 앓다가 책 후반부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내용이 나왔다. 나는 그 책을 읽고나서 순례길을 걸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마음의 고통을 몸의 고통으로 잊고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 날부터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한 책과 영상을 찾아봤다. 순례길 준비를 위한 온라인 커뮤니티도 가입하고 비행기 티켓팅을 했다.
글로 정리하니 확신을 가지고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 같지만 사실 많이 고민하고 망설였었다. 비행기표도 처음에 끊었다가 유럽 소매치기가 무서워서 취소했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비행기표를 끊고 순례길에 올랐다.
순례길은 몸이 힘들었고 내가 예상했던대로 몸의 고통으로 마음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생활이 심플해져서 크게 고민할 일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먹고 걷고 자고의 반복이다. 그 날 정해진 할당량만큼 걸으면 일과가 마무리 된다. 한국에서처럼 복잡한 업무와 걱정에 시달릴 일이 없었다.
순례길을 마무리하고 2주 정도 했던 유럽여행도 좋았다. 한국에서의 일은 잊고 즐겁게 여행했다.
유럽여행까지 마무리하고 파리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한국 갈 생각에 신이 났다. 한국가면 앞으로 여행도 자주 다니며 여유롭게 살 생각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쉬고 있는데 또 다시 우울과 무기력이 올라온다. 다 잊은줄 알았는데.. 이제 내가 단단해져서 순탄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내 착각이었나보다. 나는 지금 순례길 떠나기 이전처럼 무기력하고 우울하다. 순례길은 단지 회피의 수단이였을까?
나에게 일어난 일들이 원망스럽고 화가난다. 살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올라온다. 부모님이 원망스럽다. 나를 왜 낳아서 이런 고통을 겪게 하는걸까? 책임지고 키우지도 않을거면서, 버릴거면서 왜 나를 낳았는가? 엄마에게 버림받고 계모에게 버림받고 아빠에게 버림받았다. 그 상처는 그대로 죄 없는 아기의 무의식에 고스란히 저장됐겠지.
나는 이제까지 버림받지 않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애써왔다. 나보다 남을 배려하고 상대의 기분이 내 기분보다 중요했다. 사랑받으려고 발버둥 칠수록 내 에너지는 소진되고 스스로 고갈됐다. 사랑받으려는 노력은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
사랑받으려는 노력을 멈추고 사랑받기위해 참고 억눌러왔던 내 감정들을 마주봐야할 시간이다. 내 자신의 감정해소 없이는 그 어떤것도 회피수단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두렵다. 나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바라보기 두렵다. 방법도 잘 모르겠다.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요즘은 무기력하게 누워서 TV보다가 새벽에 잠들어서 오후에 일어난다. 하루 한끼 겨우 챙겨먹는다. 집은 제대로 치우지 못해 지저분하다. 나도 이렇게 살고싶지 않다. 그러나 방법을 모르겠다.